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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커브 부활할까

간만에 보는 개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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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2.0 2007-04-26 12:41]    
4월 6일 잠실구장. 양상문 LG 투수코치는 KIA와의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심수창의 불펜 투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양코치가 올해의 키워드로 꼽는 단어는 커브(Curve)다. 변화구의 대명사로 불리는 구종이지만 오랫동안 한국프로야구에서 홀대받아왔다.
SK 신인 김광현의 주무기는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커브다.(사진 제공=SK 와이번스)

양코치는 “6,7년 전부터 좋은 커브를 던지는 투수가 드물어졌다”며 “올시즌에 대비해 투수들에게 커브를 연마하라고 주문했다. 우리 팀뿐만이 아니다. 시범경기에서 보니 다른 구단 투수들도 커브를 많이 던지더라”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해 스트라이크존을 규정대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변경이 아니라 규정대로라고 강조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아래쪽이 길어지고 바깥쪽이 좁아졌다. 이론적으로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노리는 슬라이더 투수들은 불리해졌다. 반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를 던지는 투수에게는 유리하다. 각 구단이 커브에 신경을 쓰는 이유다.

오프시즌 LG 전력보강의 핵인 박명환이 바로 그렇다. 박명환의 주무기는 빠른 슬라이더. 박명환은 “내 슬라이더는 세로로 떨어진다. 홈 플레이트 가장자리가 아닌 가운데를 보고 던지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의 변화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명환도 새 시즌에 대비해 커브를 가다듬었다. 지난해까지 컷패스트볼을 준비했지만 전지훈련 때는 이보다 커브 컨트롤에 더 집중했다. 롯데 에이스 손민한도 “올해 커브 구사 비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한다.

SK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신인 김광현의 주무기도 위에서 아래로 크게 떨어지는 커브다. 4월 10일 홈 개막전에서는 지난해 우승팀 삼성을 맞아 4이닝 8안타 3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커브의 위력은 인정받았다. 그의 커브는 높은 타점에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느린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능력도 갖고 있다. 새 외국인선수인 삼성 크리스 윌슨과 한화 세드릭 바워스가 애용하는 변화구도 커브다. 커브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커브란

커브는 일반적으로 둘째, 셋째 손가락을 모아 실밥을 잡고 어깨, 팔꿈치, 손목에 회전을 넣어 던진다. 실밥을 잡거나 회전을 넣는 방법은 투수마다 다소 다르다. 직구를 던질 때보다 공을 깊게 잡아야 하지만 손바닥에 닿아서는 안 된다. 공이 손바닥에 밀착되면 회전을 넣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커브 볼은 실제로는 휘지 않는다. 착시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예일대 명예교수인 로버트 어데어는 <야구의 물리학>에서 커브의 궤적을 “투수에서 홈플레이트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공은 타자의 몸쪽을 겨냥했던 원래의 직선 궤도에서 약 8.6cm를 벗어나 플레이트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 홈플레이트에 이르면 공은 원래 궤도에서 약 36cm를 벗어나 타자의 바깥쪽 구석을 통과한다”고 규명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조 모건은 “뛰어난 커브는 어떤 구종보다도 타자를 손쉽게 삼진으로 잡을 수 있는 공”이라고 말했다.

한국야구와 커브

한국야구는 언제 커브와 만났을까. 아마도 야구가 도입되고 얼마 뒤일 것이다. 커브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변화구 구종이다. 미국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은 1867년 캔디 커밍스라는 투수가 처음 커브를 고안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 커밍스 외에 ‘커브의 고안자’로 알려진 선수는 다섯 명이 넘는다. 아마도 커브는 여러 투수들이 여러 그립으로 공을 잡는 가운데 우연히 탄생했을 것이다.

어쨌든 커브가 19세기에 이미 등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슬라이더가 1920~30년대에 탄생했다는 게 정설이고 보면 커브는 매우 유서깊은 구종이다. 한국에 야구가 도입된 해는 공식적으로 1905년이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는 커브가 보편화됐던 시점이다. 당시의 강속구 투수 월터 존슨은 ‘커브는 비겁한 투구’라고 말했지만 그도 얼마 뒤 커브를 배웠다.

4월 10일 SK김광현의 커브를 MBC ESPN의 카메라가 연속 동작으로 잡았다.(자료 제공=MBC ESPN)

야구인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커브는 쉽게 볼 수 있는 구종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은 “주한 미군과 경기를 한 게 커브가 본격화된 계기”라고 말했다. 대한야구협회의 전신인 조선야구협회가 창설된 해는 1946년. 야구사에는 그해 8월 11일 경성운동장(동대문야구장)에서 미8군 팀과 ‘조·미친선야구대회’가 열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위원장은 “해방 전까지 한국 야구는 일본야구의 영향 아래 있었다. 당시 투수들은 직구 위주의 교과서적인 피칭을 했다. 반면 미군들은 다양한 변화구와 요즘 말로 체인지 오브 페이스에 능했다. 미군들과 경기를 하며 변화구 구사와 투구의 완급 조절을 전수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커브보다는 힘에 의존하는 피칭이 주류를 이뤘다. 고(故) 장태영은 국가대표팀의 첫 해외 원정이었던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필리핀)를 이렇게 회상했다. “가와이(河合)였던가. 그런 이름으로 기억되는 일본 투수의 공은 당시로써는 처음 보는 희한한 구종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슬라이더란 사실을 알게 되었거니와 국내 무대에서는 커브만 해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던 시절이었다.”

이충순 전 한화 투수코치는 “1950년대까지 투수들은 힘에 의존하는 야구를 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직구, 커브가 기본 볼 배합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당시 커브를 잘 던졌던 투수로는 1960년대 상업은행과 육군에서 활약했던 김설권을 꼽을 수 있다. 1962년 상업은행 감독으로 김설권을 스카우트한 장태영은 “당시 그의 커브볼은 한국 제일이라 할 만했다”고 평했다. 이위원장도 1960년대 커브의 달인으로 김설권의 이름을 먼저 들었다.

1960년대부터 재일동포들이 한국야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기업은행 에이스로 활약한 김성근 SK 감독은 시속 140km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강속구에 예리한 각도의 커브를 자랑했다.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한 뒤 애제자로 키우고 있는 김광현과 비슷한 스타일로 볼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출신 김호중도 위력적인 커브를 자랑했다. LG 양코치는 “김호중 선배의 커브는 ‘드롭’이라고 부르는 구종이었다. 휘는 각도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빨랐다. 직구도 좋았다”고 말했다.

드롭은 지금으로 치면 파워 커브와 비슷한 구종이다. 일반적인 커브와 비교하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떨어진다는 의미의 ‘드롭(Drop)’이다. 일본식 야구 용어라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커브의 일종이지만 당시에는 커브와 구분해 쓰였다.

그리고 슬라이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까지 커브는 투수들의 기본 변화구였다. 그러나 도중에 변화가 생겼다. 슬라이더가 도입된 것이다. 한국야구에서 슬라이더의 원조로는 김영덕 전 한화 감독을 꼽을 수 있다. KBO가 펴낸 <한국야구사>는 “대한해운공사 소속 김영덕이 1964년 처음으로 국내에 슬라이더성 구질을 선보였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김영덕은 “아마도 전해인 1963년에 언더핸드 신용균이 국내에서 처음 슬라이더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영덕을 비롯한 재일동포 투수들의 다양한 변화구는 한국야구에 큰 충격이었다. 1964년 김영덕은 255이닝 동안 자책점 9점만 내주며 믿기 어려운 방어율 0.32를 기록했다. 1966년 한국전력 소속으로 실업야구에서 뛴 이충순은 김영덕의 호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국내 스트라이크존은 일본보다 다소 넓었다. 김영덕 선배가 던져보니 일본에선 볼로 판정되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됐다. 슬라이더로 바깥쪽을 마음껏 공략했으니 성적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또 당시에는 공과 배트의 재질이 형편없었다. 공 반발력은 지금보다 훨씬 떨어졌고 배트는 빨랫방망이 수준이었다. 그래서 장타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1954년 6월 20일 국가대표선수들이 미8군 선발팀과 친선경기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재일동포 투수들이 보여준 변화구는 국내 투수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실업야구 시대였다. 실업 선수들은 야구를 오래 하는 게 손해가 될 수도 있었다. 은퇴를 늦게 하면 어차피 해야 할 회사 업무를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지도 않았다. 굳이 새로운 구종을 익힐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재일동포가 아닌 국내파 투수들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1965년 김영덕은 실업리그에서 방어율 0.91을 기록하고도 국내파 강속구 투수인 유백만(0.90)에게 밀려 타이틀을 내줬다. 그렇다면 왜 실업야구 투수들은 새로운 구종인 슬라이더를 익혔을까. 여기에는 환경의 변화라는 이유가 있다.

1964년부터 실업야구는 페넌트레이스를 도입했다. 경기 수는 연도별로 차이가 있지만 1964년에는 팀당 48경기를 치렀다. 팀당 주력 투수가 세 명이면 많던 시절이었다. 이충순은 슬라이더를 익힌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는 직구, 커브 두 구종만 던졌다. 그걸로도 통했으니까 굳이 새 구종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팀 경기는 내가 도맡아 던지다시피 했다. 한 번은 더블헤더를 혼자 던진 적도 있다. 경기가 끝나면 팔이 퉁퉁 부어올랐다. 할머니께서 끓인 석유에 적신 수건을 팔에 감아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짓이었다. 내출혈이 일어난 팔은 시원하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데운 셈이었으니.

그러다가 ‘도저히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슬라이더를 익혔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다. 실업야구연맹 초청으로 장훈이 뛰었던 도에이 플라이어스의 전 감독이 내한했다. 야구 관계자들이 모여 강의를 들었는데 거기에서 내가 던지는 공이 슬라이더란 걸 알게 됐다. 아마 슬라이더라는 이름은 1970년대에 간혹 중계된 일본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 중계를 통해 공식 용어가 됐을 것이다.”

팔이 아픈 투수가 왜 슬라이더라는 새로운 구종을 익혔을까. 답은 커브와 슬라이더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낙차가 큰 커브는 기본적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구종이다. 슬라이더는 배트의 중심을 비켜가는 ‘맞춰 잡는 구종’이다. 이충순은 투구 수를 아끼기 위해 슬라이더를 익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슬라이더를 배운 뒤 투구수 83개로 완투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슬라이더의 또 다른 이름은 고퍼(Gopher)다. 펜스를 향해 날아간다는 뜻이다. 제대로 꺾이지 않은 슬라이더는 느린 직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슬라이더의 영원한 적은 홈런 타자다. 그러나 당시는 홈런이 매우 드물던 시절이다. 고교야구대회에서 전체 홈런 수가 3,4개이던 시절이다.

실업야구 사상 최고의 홈런왕으로 꼽히는 고(故) 박현식은 자신의 통산 홈런 수를 100개가량으로 추산한 적이 있다. 프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프로야구 시대

프로야구 초기에는 슬라이더보다 커브가 대세였다. 원년의 삼성 이선희나 MBC 청룡 하기룡의 주무기는 커브였다. 이듬해 데뷔한 롯데 최동원은 한국 야구 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커브로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김용수, 김건우 등이 등장할 무렵 슬라이더가 커브를 앞선다. 1985년 데뷔해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 투수가 된 선동열의 주무기가 바로 슬라이더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새로운 구종이 등장한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계열의 공이다. 해태 차동철의 주무기였던 ‘V직구’가 스플릿핑거드패스트볼(SF볼)이었다. 공을 손가락에 완전히 끼우는 포크볼보다 다소 얕게 잡아 ‘반포크볼’로 불리기도 했다. 이광환 위원장은 “1984년 미국 교육리그에 OB 베어스를 이끌고 참가했다. 이때 SF볼을 처음 배웠다”고 말했다. 이위원장은 그 뒤로 ‘변화는 적지만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공이 더 유용하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1984년 삼성의 왼손투수 김일융(위)의 커브는 롯데의 오른손 최동원(아래)과 좋은 짝을 이뤘다.(사진 제공=KBO, 롯데 자이언츠)

1990년대로 접어들면 체인지업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투고타저의 가장 큰 요인으로 ‘체인지업’을 꼽는 투수코치들이 많다. 직구와 같은 투구폼에서 나오는 서클체인지업이 주종이지만 스플리터 계열을 체인지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반면 강력한 커브를 던지는 투수들은 줄어들었다. KIA 김진우 정도가 강한 커브를 던진다. 김상엽이나 전성기의 김원형, 박지철 같은 힘있는 커브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민철과 이대진은 강속구와 커브로 타자들을 떨게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커브는 부활할까

현대 김시진 감독은 커브의 부활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했다. 그는 “커브는 제대로 컨트롤하기 매우 어려운 공”이라며 “좋은 커브를 던지는 투수가 드문 이유는 컨트롤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감독의 애제자는 김수경이다. 김감독은 일본 전지훈련에서 김수경에게 커브를 가르친 적이 있다. 4주일 동안 특별훈련을 했지만 공은 홈플레이트 훨씬 앞에서 패대기쳐졌다고 한다.

이충순은 “구종은 유행을 탄다”며 조심스레 커브의 부활 가능성을 점쳤다. 그는 “사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변화는 한계가 있다. 옆으로 휘거나 아래로 떨어진다.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도 있지만 그런 투수는 드물다”며 “어차피 타자들은 투구에 적응하게 돼 있다. 큰 각도로 떨어지는 커브가 요즘 타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커브는 슬라이더보다 컨트롤이 어렵다. 지금까지 커브를 70~80% 정도 스트라이크존에 꽂는 투수는 거의 보지 못했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가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자유자재로 던졌다고 꼽는 투수는 최동원과 이선희 정도다.

최근 특히 불펜에 잠수함 투수가 많아지는 현상은 커브의 부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오버핸드 투수보다 언더핸드 투수는 커브를 컨트롤하기가 쉽다. 강속구 투수가 늘어나는 현상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광환 위원장은 “좋은 커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속구 투수가 던지는 커브”라고 답했다. 커브의 진가는 빠른 직구와 짝을 이룰 때 살아난다.

아련한 커브의 향수

지난해는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방어율(3.58)이 기록된 시즌이었다. 그러나 특기할 점이 있다. 2005년과 비교할 때 리그 방어율은 4.21에서 3.58로 크게 떨어졌지만 경기당 탈삼진은 6.3개에서 5.8개로 거꾸로 줄었다.

프로야구 원년의 경기당 삼진은 4.0개였다. 1992년에 5.0개로 올랐고 1998년에 6.0개를 넘어섰다. 삼진의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운 타자들은 홈런을 노리기 시작했다. 홈런 스윙을 하는 타자들은 당연히 삼진이 많다.

지난해 타격 3관왕 이대호는 이렇게 항변한 적이 있다. “내 홈런 수가 적다며 ‘타격 3관왕의 질이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마음먹고 홈런을 노리지 않았다. 내 삼진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슬러거들이 홈런을 치지 못한 게 어떻게 내 책임인가.” 이대호는 역대 가장 낮은 비율로 삼진을 당한 홈런왕이었다.

여기에 불펜에 힘있는 투수들이 늘어났다. 선발로 6이닝을 던지는 투수보다 구원 1, 2이닝을 던지는 투수의 탈삼진 비율이 높다. 이런 조건이라면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지난해 삼진 수는 늘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그 반대다.

홈런 타자들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게 이유기도 하지만 체인지업의 득세를 이유로 볼 수도 있다. 움직임이 적은 이런 구종은 삼진을 잡아내기 보다는 범타를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다. 프로야구 사상 9이닝당 8.5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낸 선발 투수(20경기 이상 선발 등판 기준)는 모두 10명. 이 가운데 상당수는 강력한 커브 또는 아래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삼진 투구로 삼았다. 이대진, 박명환, 정민철, 김진우, 김수경 등이다. 예외라면 왼손 제구력 투수 주형광과 지난해 류현진 정도다.

(SPORTS2.0)

특히 스플리터 계열의 공은 직구 스피드를 점진적으로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충순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투수들의 직구 스피드가 떨어졌다. 스피드건으로 재 보진 않았지만 1960년대 투수들의 공이 더 빨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포크볼’이 주요 구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때다.

조 모건의 말대로 강력한 직구와 어울린 커브는 최고의 삼진 투구다. 전성기의 박찬호가 그랬고 과거 드와이트 구든이 그랬다. 커브의 속어는 ‘찰리(Charlie)’다. 그러나 구든의 커브에는 ‘찰스 경(Sir Charle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커브는 지난해의 ‘히트 상품’인 체인지업을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효과 속도 이론’을 국내에 소개한 조용빈씨는 “직구와 체인지업만으로는 다양한 효과 구속대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타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하나 더 주는 것은 투수의 성공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시속 130km대 구속으로 성공하는 투수들은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지 않는다. 직구, 체인지업, 커브라는 단순한 패턴으로 롱런한다”고 설명한다.

커브의 부활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야구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스포츠다.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은 일단 좋은 조건이다. 투수코치들은 스피드보다는 제구력을 성공하는 투수들의 조건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타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위력적인 커브는 팬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낸다. 박찬호의 슬러브는 그렇게 팬들에게 기쁨을 줬다. 힘없이 날아온 커브에 두 눈 뜨고 삼진을 당한 타자는 화가 나겠지만 관중들은 큰 박수를 보낸다.

SK 김원형은 “커브의 매력은 타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타자들을 보면서 묘한 매력과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꽤 오랫동안 한국프로야구에는 이런 투수들이 드물었다.

SPORTS2.0 제 47호(발행일 04월 16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