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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써보고 싶었던 삼국지 인물평 [2] 관우

관우
관우는 유비, 제갈공명, 조조, 사마의, 손책과 더불어 삼국지 주요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이다.
관우말고 다른 이들이 왜 삼국지 주요사건의 핵심인지는 그 사람들을 평가할 때 다룰 것이다.

관우편을 끄적으면서 어제 유비편을 쓰면서 못썼던 부분도 이야기 하고 싶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형제에 대해서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요즘 많다.
그 시대 상황에는 그런 의형제를 맺는 일이 허다했다, 유관장 삼형제는 그냥 동네에서 의적행세를 하던 건달의 무리였다.... 등등의 시각이 그 주장의 골자다.
실제로 삼국지에서 의형제를 맺는다는 장면은 자주 나온다.
손책 주유의 의형제,  조범 조운의 의형제, 강유 종회의 전략적 의형제 등등...

그런데 그런 의견이 역사가들의 글에서 나오는 말이면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겠지만
소설가의 글에서 나온다면 그 소설가의 소설적 역량과 소설가로서의  기본소양에 의심이 간다.
실례로 장정일 소설가가 자신의 삼국지를 출판하기 전 두명의 전문인과 같이 집필한 삼국지 해제라는 책에 그런 주장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내용을 장정길이 썼다고 생각하면 이건뭐 논문을 쓰려고 삼국지를 쓰는 건지 소설을 쓰려고 삼국지를 쓴건지 도무지 알길이 없을 노릇이다.
그런 이유로 장정길 삼국지는 이제까지 보지 않았다.

유관장 삼형제의 의형제는 그 의로운 면이 단연 돋보인다. 마치 소설속에 주제일 정도로 느껴질 정도다.
유비가 말년에 떠돌던 자신의 입지를 명확하게 해주고
드디어 자신의 야망을 중국 전역에 퍼트릴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은사 제갈공명의 만류를 뿌리치고
관운장의 복수를 하기위해 동오를 침범하고
육손의 계교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자체가 그 의로운 면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유비 자신도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싶다.
유비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반드시 정의롭다고 실행하고, 정도가 아니라고 걸어나가는 인물은 아니다.
실상 상당히 주도면밀한 인간이다.
그 주도면밀함은 일을 적절하게 잘 처리하는 주도면밀 뿐만아니라,
남들에게도 어떤 이미지를 보이게 될까 남들 시선까지 의식하면서 일잘하는 주도면밀함까지 갖춘 인간이 유비였다.
그런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70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를 침범했다는 것은
단순히 관우 복수의 뿐만아니라 유비 자신의 강한 자신감도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소설 삼국지에서는 다분히 의형제의 의로움을 부각시키고 있다.
유비편에서도 그렇고 이번 편에서도 내가 이야기 하고싶은 것은 실상은 그랬을지 몰라도
우리는 소설에서 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너무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사실로 해석하려 하지말고
그 자체를 아름답고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관우는 유비에게 그런 존재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 수 있는 믿음직한 아우.
그의 충절은 오관육참(이것도 정사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뭐 어쨌거나 관우의 무공은 조조가 인정했다.)으로 널리 떨쳐졌고
무공은 익히 그 적수가 없었다.
특히나 일본 코에이사의 삼국지 게임에서 관우의 열전을 적기를
춘추좌씨전을 즐겨 읽었다는 (두예도 그랬다고 하지만...) 이야기가 있었고
삼국지 초반에 서당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학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삼국지 게임을 참고로 했다는데 피식했을 분들 있을줄안다만,
일본게임의 완성도를 아는 사람, 특히나 삼국지라는 나오기만하면 메가히트급 돌풍을 일으킬만한 타이틀에 대한 완성도는 장난아닐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의 참고에 어느정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문무겸비하고 충절이 넘치며 인간적으로도 매력이 넘치며 존경받는 관우의 존재는
스스로도 그가 공자 맹자가 아닌 한 사람의 무장인 이상 매너리즘에 빠질만한 인물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유비가 형주에서 궐기할 때 새로운 세력에게는 확실히 경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관우의 죄를 용서한 사건과
형주에 홀로 남겨둔 관운장의 지원이 늦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런 의견을 대변한다.
그만큼 관우는 삼국지의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매너리즘이 너무 강했던 것이 탓이다.
그가 그 이전에 보여줬던 학문을 아는 무패의 무장, 인간적이며 충절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그의 삶은 너무나 둥글지 못했던 면모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육손이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봉화대의 수비대장을 미방, 부사인등으로 배치했다는 것은 다만 육손을 우습게 봤다는 것만이 아니라,
육손이라는 존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할정도로 동오라는 국가를 우습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때까지 솥의 세 발과 같은 삼국 정립의 형상을 위해 동오와 친선을 노력하고 그 들에게서 이익을 찾아 먹고, 위국을 견제하고자  노력했던 촉한의 제2인자 제갈공명의 전략에
그렇게 수긍하는 입장이아니었거나, 그런 의견을 묵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그의 매너리즘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 외에도 마초 오호대장 사건이라든지, 노숙 포로사건등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조운과 그를 비교했을 때 쉽게 드러난다.
사실 관우와 유비의 의형제 이슈를 빼고
촉한에서의 공로로 조운과 관우의 공적을 따진다면 그리 큼지막한 차이가 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뭐 미염공 한수정후 관우 운장(어릴때는 자가 수장이었다고 한다...)을 열심히 까댄거 같다.
방통이 죽고 그의 죽음이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진짜 삼국지 읽기 싫었다.
마음 같았으면 방덕을 밀고 육손도 밀어버리고 동오를 통일했다면 좋겠다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보고
실제로 중3때는 그가 손권에게 붙잡혀서 사형당할뻔하다가 손권이 너무 아깝다고 형집행을 잠시 연기하고
옥속에서 관우가 탈출해서 삼국을 통일한다는 이야기도 써본적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소설속의 관우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내가
관우의 단점을 알았다고 해서 그 당시를 부끄러워 해야할까?
의리와 정리, 충절, 그리고 형제애.... 아무리 세상에 좋은 것이 많이 나오고 수단과 방법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면모를 부끄러워 하고 싶지는 않다.